청암산은 조선시대 이전에 '푸른 산'이라는 뜻의 취암(翠岩)산으로 불렸고, 일제강점기에 지금의 청암(靑岩)산으로 이름이 바뀐 것으로 전해집니다. 취암산을 빠르게 말하면 샘산처럼 들려 샘산이라는 이름도 함께 쓰입니다.
청암산 수원지는 원래 논이던 자리, 월하산과 금강을 잇던 길
청암산 수원지는 원래 논이던 자리로 전해집니다. 그 논 한가운데에 난 큰길로 회현 월하산에서 금강까지 오갈 수 있었는데, 월하산은 조선시대 만경강의 포구였습니다.
군사 요충지였던 청암산: 회현초등학교 뒤까지 쌓은 토성과 말바위 전설
청암산은 군사 요충지였습니다. 이웃한 금성산과 이어지는 이 산 일대에는 지금의 회현초등학교 뒤편까지 토성이 쌓여, 만경강을 타고 들어오는 외부 세력에 대비했습니다. 청암산에서 건너편 산으로 몸을 날린 장군의 말이 죽은 자리를 말바위라 불렀다는 전설도 전해집니다.
청암산 일대 옛 마을 5곳: 장다리·팔풍갱이·세동·요동·고사동
청암산 일대에는 장다리·팔풍갱이·세동·요동·고사동, 이렇게 마을 5곳이 있었습니다. 장다리는 조선 때 회미현에 속한 장재면에서 이름이 비롯되었고, 팔풍갱이에는 주막과 민박집이 있었으며 놀이꾼들이 살았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세동의 흔적은 지금의 세장리에 남아 있고, 전투에서 숨진 이들의 넋을 달래던 절 고사(古寺)에서 이름을 딴 고사동은 오늘날 고사리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