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산이라는 이름은 산 정상에 있는 다섯 장군의 무덤, 오성인묘에서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1760년 편찬된 「여지도서」에 그 근거가 있는데, 오성산 주변 마을에서 다섯 장군의 제사를 지낸다는 내용과 함께 이 장군들이 나당연합군의 백제 공격 때 이 산에서 숨졌다는 기록이 담겨 있습니다.
오성산 정상 227m, 무덤 다섯 기가 나란한 오성인묘
오성산은 정상 높이가 227m이며, 그 정상에 나라를 지키다 숨진 백제 장군 다섯 명을 모신 무덤 다섯 기, 오성인묘가 나란히 있습니다. 오성인묘에 서면 북쪽 산 아래로 금강과 그 건너 충청남도가 보입니다. 서쪽으로 고군산군도 섬들, 동쪽으로는 익산 미륵산과 전주 모악산, 남쪽으로는 만경강·동진강과 부안 내변산 우금바위가 눈에 들어옵니다.
오성산 오성인묘에 얽힌 소정방과 다섯 노인 이야기
18세기 「여지도서」에 실린 오성산 오성인묘의 유래담은 당나라 장수 소정방과 다섯 노인의 이야기입니다. 오성산 아래에 군사를 머물게 한 소정방이 누런 안개 속에서 길을 잃고 사비로 가는 길을 다섯 노인에게 묻자, 노인들은 자기 나라를 치러 온 적에게 길을 알려 줄 수 없다며 거절했습니다. 노한 소정방은 노인들을 베었지만, 군사를 물릴 때 이들의 곧은 절개를 남다르게 여겨 산 위에 묻어 주었다는 내용입니다. 이 이야기는 나당연합군이 군산에서 처음 치른 싸움인 기벌포 전투와 얽혀 전해집니다.
오성산 오성인묘에 묻힌 백제 장군들과 660년 7월 9일 웅진강 전투
오성산 오성인묘의 주인은 웅진강 전투, 곧 백제군과 당나라군이 군산에서 660년 7월 9일 맞붙은 싸움에 나선 백제 장군들로 추정됩니다. 이들은 백제의 수문 역할을 한 금강을 지키는 오성산에서 적을 맞았고, 포로로 잡힌 뒤 소정방의 회유를 거부하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 뒤 오성산성 정상, 곧 지금의 무덤 자리에 묻힌 것으로 여겨집니다. 오성산성은 아직 복원 전이어서 일반 방문객이 성터를 확인하기는 어렵습니다.